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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공정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3월07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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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무조건 현금으로 당장에는 매년 50만원을, 몇년 뒤에는 600만원을 주겠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면, 나는 그의 말에 솔깃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나. 어제 밤의 꿈이 길몽이었구나."

특히 코로나19로 매우 어려운 시점에 이런 속삭임은 설령 그것에 "나에게 표를 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어도 매우 매력적이다.

 

기본소득이란 정기적으로 모든 국민 개인들에게 아무조건 없이 현금을 주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법이다.이런 약속을 하는 정치인은 자연스럽게 인기를 끈다.그러나 한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 잠간만 생각해 보면 매우 위험한 독을 품고 있는 위험한 유혹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쟁과 효율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경쟁력과 효율성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있고, 1등과 꼴찌가 결정된다. 1등이 제일 많은 소득을 가져가고 꼴찌는 소득이 없거나 너무 적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런 인식이 근로윤리와 기업활동의 근저에 깔려있다. 개인들과 기업들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여 경쟁에서 이겨 남이나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소득과 이윤을 얻으려 노력한다

 

18세기 후반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는 당시 영국사회에 자유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있어 개인 간의 경쟁과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력으로 보면 유럽 최강국은 프랑스였다.그러나 프랑스는 봉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개인의 자유가 억제되고 공동체가 우선시되는 사조가 국가사회를 지배했다. 때문에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과 창의력이 응분의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개인이나 상인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노력해도 그 열매의 대부분을 왕이나 귀족들이 가져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던 겄이다. 의무와 권리의 불균형으로 불공정한 경제질서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인구는 800만명 수준이었다. 산업혁명으로 물질적 생산능력이 크게 증대되기 전의 영국은 기아에 허덕였다.어떤 해에는 굶어 죽는 국민의 수가 200만명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간의 경쟁과 그 결과에 따른 보상체계가 인정된 결과 영국에서는 그 힘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후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150여년 유지하면서 국민들은 함께 보다 높은 물질적 풍요를 누릴수 있게됬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파헤친 칼 마르크스도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원동력임을 인정했다. 이런 성취는 권리(보상)와 의무(생산에의 기여)의 균형, 즉 공정한 경제질서에 그 뿌리를 둔것이었다.

 

기본소득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고민스러운 측면을 내포한다.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즉 노력과 보상 간의 불균형이 구조화되어 있는것이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이  일정수준의 소득을 국가로부터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그건은 무조건 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다. 실업수당이 구직활동을 의무조건으로 하고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것은 그 범위가  확장될수 있는 개연성을 갖는다. 집도 직장도 기본 주택과 기본 일자리의 개념으로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생존권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흐름이 50년대 영국에 있었다.영국 경제의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독과점자본의 횡포와 부(富)의 편중 문제가 부각되고,노동자의 불만과 사회적 권리 요구가 누적되면서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세력이 힘을 얻게되었다. 이들은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권리를 부여해야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큰 인기를 얻게되었다. "집을 가질 권리,""일자리를 가질 권리,""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등이 당연히 "무조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권리에 수반된 의무는  없었다. 따라서 정부는 "집을 지어줄 의무,""일자리를 만들 의무,""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갖게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무 없는 권리가 부분적으로 현실화됨에 따라 영국 경제는 소비가 생산을 초과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생산에 기여함이 없이 소비만 할 수 있게 됨에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였다. 이 갭을 메꾸기 위해서는 외채를 차입하는 것이 일반적 방법이다. 국내소비가 국내생산을 초과하면 해외로부터 순수입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빚을 내서 수입물자 대금으로 사용해야 하기때문이다. 한국은 1993년부터 97년 사이에 이런 흐름을 경험했고, 그 결과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영국은 세계 여러곳에 식민지를 관리하고 있었고,150여년동안 축적해온 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요즈음 개념으로 대치하면 외환보유액이 아주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셈이다. 식민지로부터의 잉여와 축적된 부로 "생산없는 소비"를 상당기간 감당할수 있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진입하자 상황이 달라졌다.식민지들의 독립이 이어짐에따라 "잉여"의 중요한 한 부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이 때부터 "의무없는 권리"를 제한하려는 정치세력과 유지하려는 정치세력간의 치열한 다툼이 시작된다. 이 다툼은 70년대말까지 노동당과 보수당의 매우 잦은 정권교체의 형태로 지속된다.이 과정에서 영국경제는 쇄락를 경험했다.이런 결과로 영국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의무와 권리의 균형을 기본적으로 유지하여 공정한 경제질서하에서 국가를 경영해온 나라들에 비해 뒤떨어진 경제적 입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된다.

 

의무를 수반하지 않은 권리는 시장경제체제하에서는 이런 부작용을 초래한다.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어두운 면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도입된 다양한 복지수단들은 "조건부"이거나  경제를 해보려는 의지를 가진 개인이나 기업에게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주축으로 하되, 기회를 균등하게 주고,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더라도 의지와 능력,그리고 여건의 차이에 따라 초래되는 생존권 위협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주는 방법을 모색해온 결과이다.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본인들의 의무를 다 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여의치 않을때 지원해주는 방법을 택한것이다.

 

지구상에서 선진복지국이면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국가들중 의무없는 권리를 표방하는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없는것은 이러한 경험과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이것은 경제질서에서 공정하지 않은 거래가 배척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질서의 평화로운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충분 조건이다. 공정성이라는 사회규범이 무너지면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윤리 규범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재명 경기지사가 내걸어 정치사회적 관심을 환기한 기본소득은 영국에서의 경험처럼 정치적 인기몰이에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무가 수반되지 않는 권리"이기 때문에 어느 체제하에서든간에 공정성에 위배되고,바로 그 불공정성을 구체화한 권리와 의무의 구조적 불균형 때문에 영국이 경험한 바와 같은 국가경제의 쇄락과 국민후생의 상대적 낙후를 초래하고, 더 나아가 계층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50만원의 기본소득이라는 소액이 뭐 그리 어려운가? 의지의 문제지."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수준은 선거를 한두차례 거치면서 높아지고, 그 범위는 점점 넓어질 것이다. 50만 원은 곧 600만 원으로,기본소득은 기본주택을 거쳐 기본 일자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시리즈가 전제로 하고 있는 "무조건성"으로 인하여 불공정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1950년대의 영국이 그런 과정을 경험했다. 한국은 1970년을 지나면서 겨우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수준이었다. 영국처럼 오랫동안 축적해 놓은 부도 없고, 식민지는 물론 없다. 유럽국가들이 40여년전에 이미 경험한 고령화를 2018년에 처음 경험한 한국이다. 그만큼 한국의 재정은 취약하다.

 

 기본소득이 내포하고 있는 불공정성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오늘이 어려울지라도 우리 미래세대들에게 어둡고 퇴락한 나라를 물려주어선 안 된다. 정치인에겐 임기가 있지만,국가와 국민은 영원하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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