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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32> 국토를 제대로 지켜라.(Ⅰ)국토의 북방한계 : 공험진은 어디인가? 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8월1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2년08월06일 16시44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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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I.1 고려의 동북면 

 

국방은 국가를 방위하는 것이므로 국가의 영역, 즉 국토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국토가 있어야 국방이 있고 또 국방은 국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세종의 국방 정책은 남쪽의 왜구에 대한 방어정책과 함께 북쪽 영토의 북쪽 한계 즉, 공험진의 위치확정 문제와 북방 연변지역의 방어 기지 구축이 핵심 세 축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 말에서 부터 조선조 초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조선 국토의 북방범위는 불분명했다. 한반도의 동북지역인 함길도, 지금의 함경도 동북쪽 일대의 국경이 매우 애매했다. 이 지역은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으나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이후 고려 초기까지 동여진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고려 예종 2년(1107) 윤관과 오연총의 17만 대군이 동여진을 몰아내고 함주(咸州:함흥지역)로부터 공험진까지 9개 성(윤관의 9성)을 쌓고 그 비석을 공험진(公嶮鎭)의 선춘령에 세웠다고 했다. 고려 고종 45년(1258) 몽고세력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 토호였던 조휘와 탁청이 배반하여 화주(和州:영흥) 이북 땅을 몽고세력에게 바침으로 그 지역이 원나라 쌍성총관부가 되었다. 공민왕 5년(1356)에는 추밀원부사 유인우를 보내어 화주(和州) 이북지역을 모두 수복하여 동북면이라고 불렀다.

 

1368년 원나라를 물리치고 중국을 장악한 명나라 태조는 홍무 21년(1389) 2월에 예전에 몽고가 관할했던 백두산 및 두만강 유역지역(開原路라 불렀음.)을 다시 요동의 관할에 소속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요동군사가 압록강이남 강계지역에 철령위를 세운 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나라와 깊은 관계를 지속해 왔던 고려조에서는 이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급기야  요동을 공격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어갔다. 그러던 차에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요동에 대한 공격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I.2 임팔라실리 사건(태종 2년, 1402)

 

이러던 중 이 지역 여진족인 임팔라실리(林八刺失里)라는 자가 요동 군사를 공격한 뒤 도망 와서 압록강을 건너 귀순의사를 밝힌 것이다(태종 2년 4월 5일). 귀순 무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하던 태종은 여론을 수렴한 끝에 인륜적 차원에서 이들 무리 약 만 팔천 육백호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조정은 이들의 환송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명나라 직할 지역인 요동의 천호직을 갖고 있던 임팔라실리가 요동과 명에 대해 반역을 한 것이므로 이들을 엄격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태종은 명의 요구에 굴복하여 임팔라실리를 북경으로 압송하였다(태종 2년 12월 23일). 임팔라실리 일당을 칼에 채워 요동으로 가던 형조판서 진의귀는 도중에서 명의 사신 왕득명을 만나 함께 서울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조선에 남아있는 여진족 잔당을 모두 색출하기 위해서는 임팔라실리를 직접 끌고 다니며 색출해야 된다는 왕득명 주장 때문이었다. 

 

[명에 대한 조선영토 인정 요구 : 공험진 이남 땅]

 

명나라 요구에 부응하여 임팔라실리를 돌려보내려던 태종은 곧바로 명에게 국경문제를 호소했다. 지난해에도 명에게 요청했듯이 개원지역을 명나라의 철령위에 소속되게 하는 것은 부당하며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소속되게 하되 공험진 이남은 조선영토로 허락해 주기를 주청하였다. 태종은 그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태종 4년 5월 19일). 

   

    (i) 삼산(북청)천호가 비록 여진인이기는 하나 우리지역에 와 산지 

       오래되어 죽거나 동화되거나 하여 지금은 거의 없고,

       (參山千戶等 十處人員 雖系女眞人民 來居本國地面 年代己久....

       凋瘁胎盡 己遺種存者無幾)

 

    (ii) 우리 조상이 이 지역에 오래 살아 5대 조부의 묘는 공주(경흥), 

        3대 조부 및 조부의 묘는 함주에 있고,

       (又臣祖上曾居東北地面 玄祖先臣安社墳墓 見在孔州 高祖先臣行里 

       祖先信者春墳墓 皆在咸州)

   (iii) 홍무 7년(1375년) 10월 이전에 이동한 것은 논하지 말라는 명조의

      규율에 따라 지금 이 지역 사람은 다 본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又欽準聖朝戶律內一款 其在洪武七年十月以前 流移他郡

      曾經附籍當差者勿論)

 

주청사 김첨이 위 세가지 요청에 대한 명나라 칙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조선국왕 이휘(태종)에게 칙서를 내린다. 삼산천호 이역리불화 등 

    십처사람의 청을 허락한다. (勅朝鮮國王李諱 參散千戶 李亦里不花等

    十處人員準請 故勅 : 태종 4년 10월 1일)”

  

여기서 말하는 십처(十處)사람에는 동맹가첩목아와 답실과 파아손과 착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동맹가첩목아와 답실은 공험진 이남 경성 지방에 살고 있고 파아손과 착화는 공험진 이남인 경원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명의칙서 대로라면 공험진 이남 땅인 경원과 경성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고 조선의 북방경계를 공험진으로 공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I.3 공험진은 어디인가 ? 

 

그렇다면 당시 조선국의 북방 경계라 할 수 있는 공험진(公嶮鎭)은 어디인가. 여러 기록에서 “경원과 경성이 공험진 아래에 있다”고 했으니 공험진은 경원과 경성의 북방지역인 것은 틀림없다. 세조 6년 8월 19일에는 알타리 등 일당들이 ‘공험진 아래 회령진 부근’에 산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 알타리, 동우사합, 무응가 등이 공험진 이남 회령진 지방에 살면서......”

   (斡朶里童亏沙合 無應哥 等世居公險鎭迤南會領鎭地方 : 세조 6년 8월 19     일)

 

그리고 고려 윤관의 정벌 시에 선춘령에 비석을 세웠다고 하니 선춘령을 알면 공험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종은 이 부분이 몹시 궁금했다. 김종서에게 그 내용을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본진은 선춘점의 어느 쪽 면에 있는가. 그 비문은 사람으로 하여 

     탐문하게 할 수 있는가. 그 비문은 지금 상태가 어떤가. 그대 말이

     길이 험하여 사람을 쓸 수 없다고 하는데 폐를 끼치지 않고 탐문

     하는 방법을 궁리하여 내게 알려 주도록 하라. 

     (本鎭在先春岾之何面乎 其碑文 可以使人探見乎 其碑今何如 

     如曰路阻末易使人 則無弊探知之策 卿當熟廬以聞 : 세종 21년 8월 6일)”

 

세종이 공험진과 선춘점 비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조선의 동북방면 경계가 어디인지 궁금해서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은 공험진이 그 당시 경계였던 두만강 보다 ‘훨씬 북쪽’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북방경계였던 6진 지역보다 훨씬 더 북쪽 혹은 북동쪽에 공험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종서에게 두만강 너머에 있는 성과 비문을 조사하라는 명을 내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또, 들으니 강 너머에 오래된 성이 많다는데 그 고성에는 비갈이 혹

    있지 않을까. 만약 비갈이 있다면 사람으로 하여 탁본을 뜰 수 있지

    않을지 여부를 보고하라. 그리고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칠 때 9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 성은 지금은 어느 성인가. 공험진의 어느 쪽에

    있는가,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그리고 듣고 본 바를 상세히         

    보고하도록 하라.

    (且聞江外多有古城 其古城無奈有碑碣歟 如有碑文 則亦可使人謄書與否

    幷啓 又尹瓘逐女眞置九城 其城今何城乎 在公嶮鎭之何面乎 相距幾何 

    幷聞見開寫以啓 : 세종 21년 8월 6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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