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병무의 행복한 지혜 산책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선비정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11월27일 15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11월23일 17시26분

작성자

  • 양병무
  • 행복경영연구소 대표, 전 인천재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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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는 넓은 공간에 보존이 잘 된 아름다운 고택이었다. 역사학자이며 『역사에서 길을 찾다』의 저자인 이배용 이화여대 전 총장은 함께 고택을 탐방하며 추사 김정희의 인생행로에 대한 해설을 명쾌하게 들려주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는 태어날 때부터 화제의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추사를 임신했을 때 뒤뜰의 우물물이 마르고 뒷산의 초목이 말랐는데, 추사가 태어나니 샘물이 다시 솟고 초목이 생기를 찾았다고 해요.” 

신동으로 소문난 추사가 어린 시절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 글씨를 본 재상 채제공이 아버지에게 충고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아이는 글씨로써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행로가 몹시 험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

 

추사는 24세에 아버지가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동행하여 ‘연경’에 머무르면서 명망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추사는 당시 최고의 학자였던 완원(阮元)과 옹방강(翁方綱)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배울 수 있었다. 이들도 조선 젊은이의 학문의 깊이와 열정에 감동하여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었다. 

북경에서 돌아온 후 추사는 청나라의 신학문과 고증학을 공부하여 비문(碑文)을 연구하는 금석학(金石學)을 개척했다. 

 

‘실사구시파’의 태두가 된 추사는 비문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녔다. 먼저 북한산에 올라 ‘무학대사비’로 알려졌던 비문의 탁본을 해서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냈다. 경주에도 내려가서 ‘무장사비’ 등의 비문을 찾아냈다. 

그는 중국에 있는 스승에게 편지로 질문하고 배우면서 학문의 열정을 살려 나갔다. 스승들 역시 가까이 있지 않아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없어 안타까웠으나 서찰을 통해서나마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었다. 

 

그는 대과에 급제하여 관료로서도 탄탄대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병조참판까지 올라갔다. 명문가로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게 없는 그에게 인생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당쟁에 휘말려 문초를 당했다. 죽음을 겨우 면했으나 1840년 그의 나이 55세에 제주도 위리안치 형이 내려졌다. 

위리안치는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바깥에서의 활동은 제한되는 것으로 유배 중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이다.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 유배되었으나 그 지역 내 이동은 자유로웠던 반면 추사는 그렇지를 못했다.

 

추사는 그 서러움을 학문연구와 붓글씨로 달랬다. 부인에게 한글 편지를 자주 보냈으나 귀양살이 3년째,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다행히 그는 인복이 있어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역관 이상적은 중국에서 매년 귀한 책을 구해와 보내주었다. 추사는 제자의 의리에 감동하여 1844년에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세한도〉는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해 ‘나무 네 그루와 집 한 채’만을 그려 넣어 추운 겨울의 스산한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歲寒圖〉는 조선시대 인문화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추사는 발문에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적었다. 

“세상 사람들은 도도한 물살처럼 오직 권세와 이익이 있는 곳에 수없이 찾아가서 잘 보이려고 하는데, 이 남쪽 끝에 떨어져 늙고 초라해진 노인에게 보내는 그대의 마음을 보니, 흡사 공자 말씀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 잎이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구나. 그대가 나에게 한 일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이상적은 〈세한도〉를 중국에 가지고 가서 감상회를 열었다. 당대 청나라의 쟁쟁한 학자와 문인 16명이 감상문을 썼다. 세한도는 중국학자들의 감상문까지 더해지면서 유명해졌다. “명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고 했던가? 〈세한도〉는 추사가 처한 극한적인 상황과 청나라 나들이로 인한 국제적인 명성까지 더해지며 명작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세한도〉는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 교수가 소장하고 있었으나, 서예가 손재형이 일본까지 건너가서 몇 달 동안 집으로 찾아가 “이 작품은 한국에 꼭 있어야 한다”고 지성을 다해 설득했다. 손재형의 정성과 집념에 감명 받은 치카시 교수는 “그대의 나라 물건이고, 그대가 나보다 이 작품을 더 사랑하니 가져가라”고 하면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작품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집이 폭격으로 전소되었는데 만약에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재로 사라질 뻔한 작품이었다. 

 

추사는 유배 생활이라는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고 추사체를 완성하여 학문으로 승화시켰다. 추사체는 역대 중국 문필가들의 글씨체를 연구하고 습득하여 그들의 장점들을 살려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창의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9년 만에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추사는 대흥사에 들러 오랜 친구 초의선사를 만났다. 서울로 올라와 지내다 67세 때 다시 정쟁에 휘말려 북청으로 2년 동안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인생의 말년에는 경기도 과천에서 지냈다. 마지막 작품으로 봉은사의 <판전(版殿)>을 남기고 71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작은 이익과 권력 앞에 눈이 어두워 진리에도 눈을 감는 현실 앞에서 조선 선비정신의 절정을 그려낸 〈세한도〉의 고고한 모습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배용 총장은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이 보여 준 역지사지, 포용과 상생의 선비정신이 오늘날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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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1월27일 15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11월23일 17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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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님의 댓글

macmaca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

@유교는 이번생, 저번생같은 윤회가 없습니다. 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처우됩니다.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개념이겠지요.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굿이나 푸닥거리라는 명칭으로 신령숭배 전통이 나타나도, 이를 무속신앙이라 하지는 마십시오. 불교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유교 경전 논어 팔일(八佾)에서는 공자님이전부터 섬겨온 아랫목 신(안방신), 부엌신등을 섬기는 전통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신명 섬기기에 대해서, 공자님도 오래된 관습으로, 논어 "향당(鄕黨)"편에서, 관습을 존중하는 예를 표하셨습니다. 신명(神明:천지의 신령)모시기 전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상을 섬기는 제사는 유교가 공식적이고, 유교 경전에 그 절차와 예법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교경전 예기에는 상고시대 조상신의 위치에서 그 혼이 하늘로 승천하시어 인간을 창조하신 최고신이신 하느님[天(하느님, 하늘(하느님)]하위신의 형태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五帝가 계십니다. 유교는 하느님(天), 五帝, 地神, 山川神, 부엌신(火관련)숭배등 수천년 다신교 전통이 있어왔습니다.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무속은 은.주시대 始原유교의 하늘숭배,산천숭배,조상숭배, 주역(점)등에서 파생된 유교의 지류.

역사적 순서로 보면 황하문명에서 은.주시대의 시원유교[始原유교:공자님 이전 하느님(天)과 여러 神明을 숭배]에서, 한국 고조선의 기자조선으로 始原유교유입, 기자조선(始原유교) 마지막왕 기준의 후손이 삼한건설, 삼한(始原유교)의 영토에서 백제(마한).가야(변한).신라(진한)가 성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