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부부의 품격을 배우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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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9월27일 22시31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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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1)은 1994년 4월 27일 닉슨 영결식에 참석한 로널드 레이건이 낸시 여사의 부축을 받으면서 자리를 찾아 가는 모습이다. 레이건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가까이서 레이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다. 레이건은 부쩍 늙었을 뿐 아니라 보행도 자유롭지 못했다. 레이건을 오랜만에 만난 조지 H.W. 부시도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주변에 전했다. 낸시 여사는 레이건이 사람을 못 알아 볼까봐 미리 누구누구라고 레이건에게 귀속 말로 알려 주었다. 닉슨 영결식은 레이건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행사였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간혹 기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곤 했는데, 일단 누구인지 알고 나면 전혀 문제가 없이 대화를 하곤 했다. 의사들은 그런 정도는 70살이 넘은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있는 건망증이라고 보았다. 임기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랜치로 돌아온 레이건은 그 해에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다. 의사들은 레이건의 뇌에 생긴 혈전을 수술로 제거했는데, 이로 인해 뇌 기능에 나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레이건은 1992년 8월에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훌륭한 연설을 해서 환호를 받았다. 레이건은 자신이 80년을 사는 동안에 공산주의의 탄생과 공산주의의 종말을 보았다고 말했다. 1993년 들어서 의사들은 레이건의 건망증 증세가 나빠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해 2월, 레이건 기념 도서관에서 마가릿 대처가 참석한 자신의 생일 축하 파티에서 레이건은 대처를 위한 건배를 하고서 또 다시 건배를 해서 대처가 건배를 두 번 받는 일이 있었다. 레이건의 기억력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돌자 레이건을 알았던 사람들은 더 늦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레이건 부부의 저택을 찾았다. 

 

1994년 4월에 닉슨의 영결식을 다녀온 후 레이건은 외출을 삼갔다. 의사들은 레이건에게 알즈하이머 증세가 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치유할 방법은 없으며 대략 10년 안에 사망할 것으로 판단했다. 언론이 남편의 병세를 다루게 될 것으로 생각한 낸시는 먼저 그 사실을 공표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됐다. 11월 첫 토요일, 레이건과  낸시, 그리고 프레드 라이언 비서(전직 대통령 비서)와 저택을 방문한 담당 의사가 서재에서 모여 있을 때 레이건은 자신이 먼저 자신이 알즈하이머임을 알려야 한다면서 메모지와 펜을 들고 창가의 테이블로 가서 고별사(告別辭)를 쓰기 시작했다. 

 

쉼 없이 고별사를 끝낸 레이건은 낸시에게 주고 읽으라고 했다. 낸시가 이를 읽는 동안 레이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레이건은 라이언에게 타이핑을 해서 공표하라고 했다. 하지만 라이언은 “미국민은 레이건의 육필(肉筆)로 보아야 한다”고 타이핑을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 11월 5일자로 ‘My Fellow Americans’으로 시작하는 고별사가 알려지게 됐다. 레이건은 “당신들의 대통령으로 봉사할 큰 명예를 준 미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 - 나는 이제 인생의 황혼을 향해 가는 여정(旅程)을 시작합니다. 미국에게는 항상 밝은 새벽이 앞에 있을 것입니다”로 고별사의 끝을 맺었다.   

 

레이건의 고별사는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그리고 이틀 후 미국인들은 투표장으로 향했다. 11월 8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대승(大勝)을 거두었다. 하원선거는 공화당이 54석을 추가해서 공화 230석, 민주 204석이 됐고, 상원선거는 공화당이 8석을 추가해서 공화 52석, 민주 48석이 됐다. 민주당이 다수파이던 상원과 하원이 모두 공화당 다수로 바뀐 것이다. 주지사 선거에선 공화당이 10개 주를 추가해서 공화당 주지사 30명, 민주당 주지사 19명으로 판도가 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여소야대가 됨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가시밭 같은 세월이 열리고 말았다.)

 

그러면 레이건 부부는 며칠 뒤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돕기 위해 날짜를 택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날, 그동안 검사 결과를 갖고 회의를 해온 의사들이 알츠하이머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담당 의사가 레이건 저택으로 찾아와서 결과를 알려 주었기 때문에 선거를 의식하고 발표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실제로 의사들은 11월 5일자 공식 서신으로 레이건이 치료 불가능한 알즈하이머라는 진단 결과를 레이건 부부에게 통보했다. 

 

그 후 낸시 여사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레이건을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1996년 대선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밥 돌(Bob Dole 1923~2021) 상원의원 정도가 레이건을 만났다. 낸시는 남편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96년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선 낸시 여사가 연설을 했다. 낸시는 그 날 찬조연설을 한 사람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레이건은 차츰 모든 기억을 상실해 갔다. 1999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낸시는 레이건이 자신과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털어 놓았다. 레이건의 병세는 차츰 나빠져서 2004년 6월 5일 숨을 거두었다. 따라서 낸시는 10년 동안 레이건의 시중을 든 셈이다. 

 

레이건 영결식은 워싱턴 내셔널 캐서드럴에서 열렸고, 유해는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 레이건 기념 도서관 묘소에 묻혔다. 마가릿 대처는 캘리포니아 장지(葬地)까지 따라가서 낸시 여사와 함께 레이건이 묻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낸시는 레이건과 함께 살았던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에서 12년을 혼자 더 살고 2016년 3월 사망했다. 낸시는 레이건이 사망한 후 전직 대통령 배우자에 나오는 연금을 사양했다. (이런 것이 바로 ‘품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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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닉슨 영결식장에서 낸시 여사의 부축을 받는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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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레이건의 육필 고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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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낸시 여사의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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